미술심리를 시작하면서 가장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착각 하나가
그려진 결과물로 그린 사람의 심리를 해석, 판단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술심리 상담 실습을 배우는 초반에는 연습삼아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그림을 그려보게 해보고 그것을 가지고 배운 내용을 접목하여 해석하거나
그 그림을 그대로 들고 와서 실습을 가르치는 선생님에게 물어보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물론 그림에는 그림을 그린 사람의 무의식이 투영이 됩니다.
그래서 나움버그는 그림에 나타나는 상징성 자체로 내담자의 심리를 해석하는 '치료에서의 미술'을 중시하였습니다.
반면 '치료로서의 미술'을 중시하는 크레이머의 이론에 따르면 심리를 분석하는 요소는 미술의 결과물이 아닌
미술의 행위에서 나타나는 내담자의 태도나 행동, 심리기제 등이 해석의 주요 요소라고 보았습니다.
이것은 후에 울만에 의해 어느 하나도 그 자체가 100%가 되는 것이 아닌, 미술행위와 결과물 모두가
같은 중요성을 가진 요소라는 것으로 통합되게 됩니다.
그림의 결과물만을 가지고 심리상담을 한다면 '치료에서의 미술'을 중시하는 입장이 되겠지만
사실 미술의 결과물에 나타나는 요소에는 그대로 보여지는 것 외에도 방어기제와 욕망 등이 나타나기 때문에
스토리텔링과 관찰의 과정이 없이 그림만으로 심리해석을 하는 것은 접근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림에 나타나는 소재는 상담자의 현재 상태를 나타낼 수도 있는 것이지만, 원하지만 할 수 없는 욕구사항이나
오히려 원하지 않는데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요인, 무의식적인 조작 등등으로 발현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특히 상담자가 내담자에 대한 라포가 형성되지 않았거나 약한 상담 초기라면 더더욱 그림에 나타나는 소재가
현실성보다는 그 외 요인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술심리 상담을 할 때에는 그냥 도화지만 던져주고 그림만 그려서 주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림을 그리는 도중에 나타나는 내담자의 행동을 관찰하여 기록하고
그림을 다 그린 후에도 그 그림을 가지고서 내담자와 상담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미술치료라고 해도 결국은 심리상담치료의 한 방법이기 때문에 그림 그린 것을 일회적으로 보고 그것으로 처방을
내리는 것이 아닌, 지속적인 상담과 내적 접근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1급 과정에서는 일종의 보고서인 '상담일지'를 작성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그것을 실습하여 제출하는 것이
수업의 방법이더군요. 2급 과정이 나움버그적인 접근이었다면, 1급과정은 그것을 바탕으로 한 크레이머적인 접근입니다.
하지만 사례 분석에서 '치료로서의 미술'을 당장 보여주기는 어렵습니다.
심리라는 것이 구체적으로 통제된 언어를 사용하여 표현하는 사전적인 해답이 있는 것이 아니니만큼
사례로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아무튼 '치료에서의 미술'에 나타나는 '그림 결과물'이 될 수밖에 없겠죠.
이번에 그린 것은 개인 심리상담에서 주로 사용하는 투사적 진단법(House, Tree, Person) 중 하나인 나무 그림
그리기입니다. 그림이 취미이긴 해도 항상 그림을 그리는 생활을 하는 게 아니다보니 여전히 타블렛은 손에 익지 않네요.
지난번에 그렸던 집 그림이 현재의 상태를 나타낸다고 했을 때, 나무 그림은 상담자의 지난 과정과 앞으로의 계획 및
미래에 대한 내면적 입장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습니다.
미술의 결과물에서 판단했을 때 우선적으로 볼 부분은 이상요소입니다.
집, 나무, 사람은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소재이기 때문에 투사적 진단법으로 HTP 검사를 시행하는 것인데
그림에 보편적인 상식에 어긋나는 요소가 나타나거나 주 소재가 차지하는 비중이 비정상적일 때 그 부분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상담에서 그 이유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내담자의 상담자에 대한 라포 형성이 중요합니다.)
일반적으로 '나무'를 그리라고 하면 제가 그린 것 같은 쌍떡잎류 현화식물을 그리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내담자가 덩굴이나 대나무, 양치식물 등을 그려서 보여주면 둘 중 한가지입니다.
내담자의 주변에 흔한 식물이 정말로 그런 나무들이거나, 상담에 대한 방어기제가 심하거나.
라포 형성이 잘 되었다고 해도 상담요소의 민감성에 따라 방어기제가 강하게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일반적인 나무를 그린다고 해도 도화지의 크기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크거나 작거나, 나뭇잎 등 중요 요소가 탈락됐거나
하는 부분도 이상요소로 볼 수 있습니다.
나무에 왜 나뭇잎이 없는지 물었을 때 내담자는 '가을이라 다 떨어졌어요'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라고 해도 보편적인 '나무 그림'에서 벗어났을 때에는 그렇게 그린 이유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림 결과물 자체 뿐만 아니라 상담과정의 관찰과 대화도 중요한 것입니다.
(아무리 유능한 심리학자도 그림 자체만 가지고는 이상요소의 이유를 완전하게 판단할 수 없습니다.
치료에서의 미술에서 심리학자가 판단하는 해석기준은 내담자의 개인성이 아닌 사례들에서 나오는 보편성일 뿐입니다.)
나무그림은 네 부분으로 나뉘어집니다. 뿌리, 줄기, 잎, 열매.
뿌리는 과거와 바탕이 되는 부분으로 상담자의 심리적 기반을 나타냅니다.
상담이 되는 주제에 따라 가정이 될 수도 있고, 학교나 군대, 혹은 회사가 될 수도 있습니다.
(대부분은 가정, 부모, 가족, 집이 됩니다. 인생의 심리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큰 것이 유아기의 가정환경이니까요.)
자신의 배경적 부분에 불만이 많거나 감추고 싶은 사람은 그림에 뿌리부분이 나타나지 않거나(땅에서 바로 줄기부터 그려짐)
반대로 뿌리를 과장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줄기는 상담자의 성장과정을 나타냅니다. 색깔은 일반적으로 갈색이나 노란색, 붉은 색을 사용하며
검은 색 외곽선에 색을 칠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색을 칠하지 않는 경우는 외곽선의 색이 그 색이라고 간주함)
물론 도구에 따라 색 자체는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 어떻게 그려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게 좋습니다.
줄기 부분에서 눈여겨볼 부분은 잘려진 가지, 나무에 난 상처, 옹이와 같은 큰 흉터입니다.
일반적으로 건강한 나무에는 그러한 부분들이 나타나지 않지만 옹이 같은 것이 눈에 띄게 그려진 경우
줄기에서 그것이 차지하는 위치와 방향에 따라 성장기에 있었던 커다란 상처(트라우마)와 꿈을 포기해야만 했던 걸림돌의
시기를 판단할 수 있습니다.
개인에 따라 옹이는 나타날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으며, 개인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그림에 옹이가 있어도 상담시에 그것을
본인이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도 있습니다.(물론 대수롭지 않은 요소는 아니지만, 치료를 할 것인지는 상담자 본인의
선택입니다. 나무가 옹이에 도끼자국 투성이어도 상담자가 상담에 방어적 태도를 나타낸다면 처음부터 그것을 짚어서
치료할 필요는 없습니다. 앞에서도 말했다시피 상담자와 내담자에게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라포 형성입니다.)
또한 심리치료를 한다고 해도 과거의 상처 자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후반기의 추가적인 심리상담에서
옹이는 더 뚜렷하고 명확하게 나타나 있을 수도 있습니다.(본인 스스로 그것을 의식적으로 인지하고 있는 경우)
그 다음은 줄기에서 잎으로 나가는 가지가 어떤 모양인지, 어디에서 시작하는지를 보게 됩니다.
보통은 상단에 위치하며, 뿌리에 가까운 아래쪽에 뚜렷한 가지가 있는 경우 가정이나 환경에서의 급격한 변화가 있었음을
상징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잎은 얼마나 풍성한지, 나무의 모양에 비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어떠한지에 따라 상담자의 일과 성과에 대한 입장을
판단할 수 있습니다. 대체로 나무가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잎과 열매가 많은 경우는 공부나 직무에 의한 스트레스가 심하고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지고 있는 경우는 무기력함, 포기하고 싶음, 우울함을 나타내는 경우로 주의를 요합니다.
열매는 대체로 일의 성과를 나타내며, 열매가 많이 그려진 경우는 상담자 스스로 결과에 대한 기대가 많다는 것을
나타내기 때문에 역시 나무가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풍성한 열매는 강박적인 스트레스로 볼 수 있습니다.
열매의 종류는 대개 사과를 그리는 것이 일반적인데, 흔한 과일이며 멀리서도 볼 수 있을 정도의 큰 과일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체리나 도토리, 밤 같은 작은 열매가 그려진 경우는 일에 대한 만족도가 적은 편이며
코코넛, 야자처럼 커다란 열매가 그려진 경우는 하고 있는 일에 비해 결과에 대한 욕심이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처럼 사과 그리는 것이 식상한 사람들은 그냥 의식적으로 레몬, 오렌지, 배를 그리기도 합니다.
대체로 오렌지나 배처럼 이상하지 않으면서도 대중적이지 않은 열매를 그리는 사람들은 그림에 소양이 있고,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 특징도 있습니다.
('나무, 식물'에 대한 상식이 부족한 경우는 현화식물에 포도나 수박, 참외같은 열매를 그리기도 합니다.
의외로 포도가 덩굴식물이라는 것을 모르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나무 외에 그려진 요소, 특히 동물은 회귀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나무 줄기에 구멍을 파고 동물이 있는 경우는
현재에 대한 불만이 극심하고, 그 구멍이 위치하고 있는 시기로 되돌려서 현재의 상황을 변화시키고 싶은 욕구가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무에 새가 둥지를 틀었거나 나무로부터 새가 날아가는 모습은 현재의 상황 자체에서 일탈하고자 하는 자유로의
욕망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체로 함께 그려진 동물이 다람쥐인 경우 유아기나 성장기로의 회귀를 나타내고,
고양이나 뱀인 경우 상담자를 힘들게 하는 인물적 요인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새는 일반적으로 나무를 자유롭게 떠날 수 있는 동물로서 자유에 대한 욕망을 나타내고는 합니다.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지는 것은 지금의 상황을 포기하고 싶은 무기력한 상황을 나타내지만
새가 있는 경우는 스스로 다른 환경을 선택하고자 하는 적극적인 태도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해석대로 말씀드리자면 일단 저도 제 일 자체가 맘에 들지 않는 건 아니지만, 직장을 옮기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미술에는 언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무의식이 상징성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본인 스스로 의식하고 있는 문제점이나, 내담자에게 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요소,
상담을 하고 싶고 표현하고 싶은 의식적이고 의도적인 요소가 그림에 나타나기도 합니다.
만일 상담자가 그러한 부분을 잘 짚어낸다면 내담자는 내적 만족감을 얻을 것이고,
상담자와 내담자의 관계형성에도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