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습의 데스노트

남 저세상 보내기 전에 내가 고지혈증으로 죽겠다, 야.

(아.. 가을은 사과 다이어트가 절실해지는 계절)

by 리언바크 | 2008/09/05 16:18 | 노때잡동산 | 트랙백 | 덧글(2)

천일의 스캔들(The Other Boleyn Girl) : 모든 것은 그의 계획대로...

요즘들어 왜 이렇게 <스타워즈>의 환영들이 스크린을 맴돌고 있는건지...
3편에서 맞짱뜨던 두 명의 제다이 나이트는 <점퍼>에서 세계 각지를 넘나들며 여전히 맞짱을 뜨고,
위원회를 들었다 놨다 하던 나부의 여왕님은 <천일의 스캔들>에서 영국을 들었다 놨다 하는 상황이라니...
조만간에는 마스터 요다의 얼굴을 어디선가 다시 보게 될 날이 있을지도 모르겠군... 허허허.
(설마 <헐크 언크레더블>에서? ㅎ)

제목만 보고 '천일의 스캔들'이라길래, 지루한 로맨틱 드라마인 줄만 알았더니... 이거이거, 스펙타클하잖아!
대규모 전투 씬이 있는 것도 아니고, 배경이라고 나오는 건 어둡고 차가운 돌로 된 성 내부의 모습 뿐인데도
블록버스터 못지 않은 극적 긴장감이 이 작품에는 나타나고 있다.

역사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작품, 처음에는 그다지 관심도 없었기 때문에 리뷰조차 안보고 영화를 접했지만
'헨리 8세'의 이야기라는 것을 듣자 호기가 발동했다.
종교까지 바꿔가면서 5번이나 아내를 갈아치운 미스터 헨리의 이야기가 스크린에서는 어떻게 묘사될까.
하지만 영문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영화의 주인공은 헨리 8세가 아니라 볼린가(家)의 소녀이다.

근대 이전의 역사에 관해서는 문화교류사만 챙겨 보다보니 영국이나 프랑스의 왕가나 전쟁사에 대해서는 띄엄띄엄
알고 있어서 이 영화 보면서 나의 무지(無知)에 대해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영화, 고증이 참 잘 되어있다.
요즘 한국에서는 역사드라마니 퓨전사극이니 하면서 만화와 같은 구성으로 허구의 시트콤을 만들거나
있지도 않았던 사건들을 갖다붙여 역사관에 혼란을 주기만 하는데, 사실 그대로의 이야기는 나름 신선했다.

하지만 아직도 이해가 안되는 것이, 내가 얼핏 알기로는 메리 볼린이 앤 볼린의 언니였고
앤이 언니에게 엄청나게 구박을 받으며 살았었다는 것인데...
엘리자베스의 전대 여왕이 블러디 메리였기 때문에 동명이인으로 인한 혼돈도 많이 생기고 있다.
(블러디 메리는 앤 이전의 왕비였던 캐서린의 딸로, 엘리자베스를 엄청 괴롭혔다고 함.)
게다가 캐서린도 표독스러운 여자로 알고 있었는데, 영화에서는 너무나 기품이 넘쳤다.

하기야, 역사의 기록만 가지고서 그 당사자의 성격이나 캐릭터가 어떠했을지까지 판단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지만
영국 왕실의 역사에 관해 제대로 알고 있는 분과 같이 보지 않았다면 그 상황들이 상당히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표독스럽지 않았던 기품의 여왕 캐서린은, 내가 알고 있던 것과는 달리 사형당하지 않고 수도원에 귀양을 갔으며
성군 앨리자베스의 어머니이자 마녀의 이름을 쓰고 죽은 앤 볼린은 연약하고 섬세하기보다는 상당히 당찬 여자였으며
도끼가 아니라 엑서큐셔너스 소드에 목이 날아갔다는 것도 기존에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너무 달랐다.
(뭐, 길로틴이 등장한 것은 프랑스 루이 16세의 폐위로 왕정이 무너지면서부터이니까 한참 후의 일이고...)
그래도 왕비인데 고통 없이 한칼에 날려줬겠지...

시나리오의 구성은 마치 16세기 영국의 '여인천하'를 보고 있는 것과 같았다.
왕비가 아들을 낳지 못한 채 폐경을 해버리자, 왕의 후사인 아들을 낳아줄 여자가 절실히 필요했었고
(이거 쉽게 생각할 문제 아니다. 그저 남녀상열지사에 불과한 게 아니라, 왕권의 존폐가 달려있는 문제다.)
귀족인 볼린 가문 사람들이 기회를 잡아 두 소녀를 후궁으로 바치는 것으로 이야기는 진행이 된다.

사실 아무리 엄격한 카톨릭 국가였다고는 해도, 교황보다는 왕권의 세력이 더 컸던 것은 물론이요
더우기 나라가 좌지우지할 수 있는 마당에 첩질을 통해 후사를 얻었다고 해도 흉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만큼 서양에서도 왕과 귀족은 아내 외에도 후처나 첩을 둘 수 있었고, 그렇게 가진 자식을 왕위에 올릴 수도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앤 볼린이 헨리 튜더의 애간장을 태웠다고 해도, 나라를 들쑤시면서까지 앤을 왕비로 들여야 했던
이유가 헨리에게 있었을까. 앤 역시 메리처럼 후궁으로 두었어도 큰 문제는 없었을 것이다.
아무리 후처가 당차고 매력적인 여자라고 해도 왕의 체통을 생각해서 함부로 캐서린 왕비를 폐위시켜 에스파냐 및
카톨릭과 마찰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된 것은 문제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캐서린 왕비를 '아들을 낳기는 커녕 아이 가지는 족족 사산만 한다'는 죄명으로 수도원에
귀양보내고, 여왕의 자리에 앤을 봉립한 것은 당연히 '그럴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의 장르는 정치영화이기보다는 로망스 드라마의 색채가 짙기 때문에, 그러한 정치적 상황보다는
앤 볼린이 얼마나 도도하게 굴며 헨리를 애태워 왕비의 자리까지 꿰어차게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사실 헨리 8세의 영향력이라면 그깟 하급 귀족의 딸 하나 취하는 건 어려운 일도 아닌데 말이다.

당시 영국의 왕권은 카톨릭이 종교를 넘어 정치에까지 간섭을 하고 있어 왕권 강화에 걸림돌이 되고 있었고
(카놋사의 굴욕 이후로 중세 유럽의 역사는 종교와 정치의 엎치고 메치는 승부가 계속되었다.
오죽하면 그 긴 기간을 '암흑기'라고 할 정도로 문화나 산업에 거의 발전이 없었을까.)
특별한 사건을 터트려 왕의 자리를 높이고 그 기반을 단단히 다지는 계기가 필요했었다.

요컨데 종교를 넘어 정치에까지 간섭하는 카톨릭 세력을 정치권에서 숙청해내고
무역 항로 문제로 마찰을 빚고 있던 에스파냐와 전쟁을 벌이기 위한 계기가
필요했던 터에 캐서린 왕비의 폐위는 그것을 위한 적당한 방편이었던 것이다.

즉, 캐서린 왕비가 아들을 낳았어도 헨리 8세는 카톨릭 및 에스파냐와 맞장을 뜨기 위한 다른 방법을 찾았을 것이다.

아마 헨리 8세가 카톨릭을 등지고 성공회를 국교로 선포하지 않았다면, 엘리자베스 여왕은 역사 속에 큰 인물로
자리매김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해상강국인 에스파냐에 그늘에 가려 큰 제국으로 성장할 기회마저 없었을 것이다.
사실상 영국이 에스파냐의 무적함대를 격파하고 대제국으로 성장하고, 암흑기를 넘어 산업혁명의 본국이
된 것은 헨리 8세의 과감한 결단력이 초석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대사업의 큰 전환에는 반드시 악역이 필요한 법이다.
앤 볼린은 헨리 8세의 야망을 실현하기 위해 필요했던 일종의 방패막이였고, 그 역할을 확실히 수행하였다.
오죽하면 교황청과 등을 져서 영국을 들쑤셨다고 손가락질 받은 인물이 헨리 튜더가 아니라 앤 볼린이었을까.
뭐, 확실히 시민혁명이 일어난 것도 아니고 그 상황에 왕을 문책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희생양이 필요했을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앤은 왕비이지만 마녀가 될 수밖에 없었다.
왕궁의 사람들이 영국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이었던 만큼, 캐서린도 앤도 메리도 그런 상황을 짐작했을 것이다.
하지만 폐위되거나 죽는 것은 인간인 이상 억울하거나 두려울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결국 '토사구팽'이라고, 왕을 꼬셔 왕비의 자리를 빼앗는 바람에 에스파냐의 적이 되고(캐서린 왕비가 에스파냐의
공주였다), 나라 전체가 카톨릭의 파문을 받아버려 나라를 온통 들썩이게 만든 앤 볼린은 '왕의 아들을 사산했다'는 이유
때문에 마녀의 이름을 뒤집어쓰고 사형대에 오르게 된다.
어쨌건 헨리 8세의 야망은 실현이 되었고, 스무살도 안된 가엾은 소녀만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을 뿐이었다.
하지만 세계사적 관점으로 볼 때 앤 볼린의 희생은 결코 헛되지 않은 죽음이었다.

그렇게 아내 여섯을 거느리고도 아들 하나를 얻지 못한 헨리 8세는 사후에 캐서린 왕비를 쏙 빼다박았다는
'블러디 메리'가 여왕으로 영국을 통치하게 되고(이 여자도 앨리자베스를 띄우기 위해 악역으로 조명되는 것일지도...),
그 후에 영국을 대제국으로 성장시키는 '엘리자베스'가 등장하게 된다. 이 엘리자베스가 바로 앤 볼린의 딸이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볼린 가문의 숙청과는 관계없이, 왕의 딸이었기 때문에 무탈하게 왕위에 오를 수 있었다.
(솔직이 무탈한 것도 아니었지. 메리 튜더가 엄청 못살게 괴롭혀댔으니까...)
엘리자베스는 어머니가 사형으로 죽음을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를 미워하기는 커녕
그의 모든 계획을 어김없이 수행하였다. 오히려 헨리를 미워하던 것은 메리 튜더였고, 그녀는 헨리의 청개구리였다.
따라서 메리 튜더가 일찍 요절하지 않았으면 헨리 8세의 야망은 그의 대에서 끊겨버렸을 지도 모른다.
엘리자베스는 여자의 몸으로 대제국을 이룩했을 정도로 상당히 당찬 여자였다.
아마도 영화에서 보여지는 앤 볼린의 모습을 그대로 빼다박은 인물이었을 것이다.

당시 헨리 튜더는 에스파냐 및 카톨릭과 맞장을 뜨기 위해 왕비를 갈아치울 정도로 당돌한 여자가
필요했고, 앤 볼린 역시 나중에 왕에게 버림받지 않을 확실한 자리가 필요했다.
시대적 필요에 의해 두 사람은 만났던 것이고, 그렇게 이야기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하지만 앤이 아들을 가지지 못하면서부터 헨리의 계획은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한다.
당연히 자기가 들쑤셔놓은 영국의 상황을 진정시키기 위해 헨리는 후사가 반드시 필요했고
앤은 자기 때문에 내쫓겨난 조강지처 캐서린과 같은 상황에 놓일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헨리가 에스파냐와 교황을 등지면서까지 캐서린을 내쫓은 명분이 '왕자가 없어서'였기 때문이니만큼...)

그래서 이때부터 앤 볼린은 아들을 가지기 위해 혈안이 된다.
아들을 사산한 것을 감추기 위해 왕의 후궁이었던 여동생 메리 볼린의 아들을 몰래 입양하려 하기도 하고
남동생과 근친상간을 하기까지 했으니...
(근친상간은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전혀 모르던 일이었는데 실제 사건이었다고 한다.)

안 그래도 자기가 저지른 일 뒷수습때문에 골머리 썩고 있는 헨리 튜더의 이런 행동들이 눈에 딱 걸린 것이다.
'모든 것은 이 마녀 때문이오!'라는 무책임한 변명과 함께, 앤은 영국 시민과 귀족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희생된다.
물론 반성의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는 듯, 헨리 튜더는 그 후에도 네명의 아내를 더 거느린다.
그것도 적당히 후궁으로 두는 게 아니라 왕비 자리를 갈아치우면서까지...
(이거 마누라 바꾸는 데 재미 들렀나?)

그러고보면 역사적으로 여성이란 참 가엾은 존재들이었다.
위대한 업적의 그림자를 덮기 위해 악역이 되어야 했으니 말이다.
집안 일은 돌보지도 않고 헛소리만 하는 남편 소크라테스에게 바가지 긁던 아내 크산티페도 악처의 대명사가 되어버렸고,
전쟁과 도적질로 물든 아르고스 호의 영웅들 이야기의 주인공인 이아손의 아내 메데이아도 마녀의 시조가 되어버렸고,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상자를 연 판도라와 아담으로 하여금 선악과를 따먹게 한 이브도 악역을 맡아야 했으니까 말이다.

내 사랑하는 여자를 평생 아무 탈 없이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그저 특출난 것 없는 평범한 남자라는 것이
이렇게 안도가 될 수 있을까 싶다. ㅋ
(하지만 여자들은 일부러 악녀를 자처하며 스릴을 즐긴다고도 하더라. ㅡ.ㅡa)

by 리언바크 | 2008/04/06 23:04 | 조조영화 | 트랙백 | 덧글(4)

인연(因緣)을 믿어요.

사람 만남이란 건 그런 겁니다.

궁합이나 사주 때문에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나야 할 인연이라면 헤어진 후에도 다시 만나게 되는 것이고
인연이 아니라면 떨어져서는 죽고 못 살아도 결국 헤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인연을 믿습니다.
만나야 할 인연이라면, 이루어져야 할 사람이라면
발버둥쳐 잡으려 애쓰지 않아도 다시 만나게 되겠지요.

그래서 기다리지 않습니다.
그리워하지 않습니다...

어떤 인연이었는지는 생의 마지막에서야 알게 될테니까요...

by 리언바크 | 2008/03/29 22:13 | 로그, 다이어리 | 트랙백 | 덧글(3)

내 생애 단 한번도 불행한 적은 없었습니다.

더 행복했던 시간이 지난 후라서, '비교적' 불행하다 '느꼈을'지는 몰라도
실제로 내 삶이 '불행하다'고 할만한 일이 있었던 적도 없었습니다.
큰 모험을 좋아하는 성격도 아니기 때문에 크게 실패하거나 좌절할 일도 없었고
그냥 무난하게 사는 걸 좋아하는 게 단순히 내 취향이기 때문에
조용하고 평범하게 사는 것을 그냥 소소한 행복으로 삼고 있을 뿐입니다.

물론 성적이 떨어진 적도 있고, 가족간에 불화가 있었던 적도 있고, 다친 적도 아픈 적도 있었고
실연을 당해 마음 아프거나, 본의 아니게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어 괴로운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불행'이라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살다보면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있기 마련인데, 나쁜 일이 날 불행하게 만드는 건 아니니까요.

그리고 사실, 행복이건 불행이건 자기 자신이 정하기 나름 아닐까요.
건강하지 못해서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지만, 그런 자신을 돌봐주는 고마운 사람이 곁에 있어서
행복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어차피 비교를 할 때 어느 쪽으로 기울이는가 하는 것도 자기 마음입니다.

지금 나는 행복합니다.
솜씨가 썩 좋지는 못해도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쓸 수 있는 재능과
나를 인정해주는 번듯한 직장과 일을 할 수 있는 능력, 나에게 주어진 시간,
그리고 하루 일과를 마치고 돌아와 꿀맛같은 휴식을 할 수 있는 나만의 생츄어리...
일생동안 힘들고 안좋은 일들도 많이 겪지만, 그래도 나에게 있는, 늘 변하지 않는
소소한 행복이 있어 나는 한번도 불행하다 느끼지 않습니다.

난 건강합니다. 난 웃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멋진 사람입니다.
앞으로 더 많은 날들을 경험하고 배우고 깨달으며 살아갈 것입니다.

이보다 더 행복할 조건이 필요한 건가요?
그런가요? ^^

by 리언바크 | 2008/03/26 23:30 | 로그, 다이어리 | 트랙백 | 덧글(4)

10000 BC : 신석기의 인디펜던스 데이

영화 제목부터 어떻게 불러야 할지...
일단 매표소에서는 '만비씨 주세요'라고 했지만, '기원전 일만년'이라고 해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기대를 너무 많이 해서 그런가,
확실히 재미는 있었지만 기대했던 만큼의 스펙터클함을 따라오지 못했던 점이 아쉬웠다.
뭐... 예고편만 보고 기대한 것이긴 하지만, 애초에 <300>만큼의 스케일을 생각한 내가 잘못이었을까.
<반지의제왕 1> 초반의 엘프와 오크의 전쟁을 본 관객들을 상대하는 영화라면
감독이 참 심적으로 부담스러울지도 모르겠다.

블록버스터급이면서도 아기자기한 스토리와 스케일을 가진 영화랄까...
아무리 매머드가 떼거지로 나와도 십년 전에 만들어진 <쥬라기 공원>에 비해서도 한참 떨어지는 편이다.
감독이나 작가는 '매머드 떼'를 영화의 관람 포인트로 지정한 모양인데, 영화를 보고 나와서도
매머드 떼거지의 장관은 그다지 여운을 남기지 못했다.
그런 것보다도, 영화 중 대사인 "야성을 잃어버렸어."라는 한 마디에 더 무거운 철학을 느낄 정도였다.

그런데, 아닌게 아니라 이 영화도 <300>의 영향을 많이 받긴 받았나보다.
코카서스 용사들을 영웅으로 만들기 위해서 까땐 상대가 여기서도 동양에서 온 이방인들이니까 말이다.
약간의 서양식 국수주의가 느껴졌다고 할까... <300>도 결국 그런 말을 듣기는 했지만
<인디펜던스 데이> 이후로 이런 스타일의 영화는 그 틀에 갇혀버린 것 같다.

영화는 나름대로 재미있었고 만족스러울 정도로 즐거웠다.
<300>만큼의 시각적이고 관념적인 충격을 받지 못해서, 그에 비교를 했을 뿐, 영화 자체는 훌륭했다.
그런데 참, 말도 안되는 동화적인 설정이라니...
서양인들은 아직도 키스로 죽음에서 깨어나는 <백설공주> 류의 스토리를 좋아하는가보다.
<매트릭스>에서도 그런 촌극을 벌이더니, 어째 스케일이 크면 클수록 결말이 다소 유치해지는 것 같다.
물론 <반지의 제왕>과 같이 탄탄한 스토리라인을 가진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는 예외로 하고 말이다.

그래도 나 역시 약간 유치한 상상이나 기대를 하게 되었다고 할까.
중간에 그런대로 중요한 비중을 가지고 출연하는 '검치호랑이'가 얼마나 큰 역할을 할까 기다렸는데
한번 다시 나타나서 예언 한번 실현해주고 그걸로 끝이었다. 싱겁기는...
적어도 자칭 '신'이라고 하는 지배자들과 전투를 벌일 때에 한번 더 나타나지는 않을까 생각했는데
코빼기도 보이지 않더군. 예고편에서는 꼭 <에일리언>처럼 카리스마 철철 넘치게 나오더니,
너 겨우 단역이었니? -_-;;;

확실히 기원전 10세기면 '선사시대(先史時代)'는 아니다.
시대적으로는 농경을 시작하여 기상과 천문, 수로를 위해 막 기록이 시작된 때였으니까,
다른 민족 사람들을 붙잡아와 노예로 부리고 신전을 쌓을 정도로 발전을 했다고 하기도 애매하고
매머드와 검치호가 활개를 치고 돌아다닐 정도로 그렇게 오랜 옛날도 아니었겠지만
이건 어디 신석기 시대의 생활상이라기보다는 로마시대의 <쿼바디스>나 <벤허>를 본 느낌이니 원...

그 시대에 짐승이라고 나오는 게 꼴랑 매머드, 검치호, 고대타조 뿐이었으니 이런 느낌이 들만도 하다.
하다못해 고대 짐승이라도 다양하고 많이 출연을 했으면 <300> 못지 않은 긴박감을 느꼈을텐데
오로지 매머드 떼에 쏟아부은 그래픽이 못내 아쉬웠다.

아마도 내가 기대한 것은 다큐멘터리 급의 '자연과의 싸움'이었기에 그에 해당하는 실망감이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기원전 1만년의 '사람들과 자연과의 싸움'을 기대하며 영화를 봤는데, 이건 뭐...
설마 지금 내가 <스타게이트>를 보고 있는 건 아니겠지? 하는 생각이 바로 들고 있으니...

아무리 영화가 재미있어도, 기대했던 전개가 흐르지 않았던 것은 확실히 실망이었다.
공룡까지는 못하더라도 빙하기나 신석기시대의 동물들이 얼마나 많았을텐데...
정글에서 나오는 게 고작 식인타조 한무리라니...
초반에 매머드 사냥할 때만 해도 엄청 기대했는데... ㅠ.ㅠ

예고편과 포스터에 나오는 매머드와 검치호랑이, 결국 그게 다였어!!!! 으아악!!!!

by 리언바크 | 2008/03/18 23:22 | 조조영화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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