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01월 26일
[미술심리]집 그림 그리기
동네 문화센터에 미술치료사 2급 자격증 과정이 있길래 그냥 그림을 그리는 취미보다는
미술 관련 자격증이라도 따면 구체적으로 뭔가 남는 게 있을 것 같아서 시작을 해봤습니다.
(아동미술 교육 관련 자격증인 줄 알았음. 뭐, 그렇다고 아주 다르지는 않음.)
작년 9월에 시작했으니, 따져보면 벌써 5개월정도가 되었는데(6개월 과정 수료임)...
미술인 줄 알고 접수하려고 했는데 내용이 미술보다는 심리상담 쪽이라서 망설였다가
이 분야도 재미있을 것 같아서 단순히 취미로 시작했다가 빠져들었습니다.
아직 자격증 취득은 커녕 수료도 못했지만, 그래도 도서관 사서가 흔하게 공부하는 것이 아니다보니
직장의 동료들이 더 흥미를 가지고 재미삼아 가볍게 미술상담을 받아보려는 사람들도 생겼습니다.
사실은 처음 시작했을 때, 내 자신을 피실험자(내담자)로 하여 테스트하는 게 편하지는 않았습니다.
워낙 내성적인 성격이다보니 마음 속에 의도적으로 방어를 하고 있는 기제들이 많아서
내 심리상태를 선생님과 다른 수강생들한테 훤하게 보여주는 게 거북해서
진짜 마음이 그림에 표현되지 않게 하려고 일부러 애쓰고는 했습니다.
하지만 방어적인 사람도 방어적인 사람 나름대로 숨기고 싶은 마음과 그런 태도들이
그림에 나타난다고 하더군요.
임상사례를 봐도, 본인의 의지가 아니게 심리상담을 받는 어린이들이나 청소년들의 그림에도
그런 방어기제가 나타나는 것을 보니 한편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미술이란 건 본인의 마음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이니만큼,
그림을 잘 못그리는 사람들은 처음에는 미술상담을 받는 것을 꺼린다고 합니다.
특히 어린이들보다는 청소년, 청소년보다는 어른들이 이런 태도들이 두드러지는데
상담자가 계속 독려를 하고 여러차례 상담을 하다보면 자신감이 붙어서 그림을 곧 잘 그리게 됩니다.
정신분석학자인 나움버그는 그림으로 나타나는 무의식의 표현을 치료자가 해석하여 진단하는 것이
미술치료라고 하였지만, 크래머는 미술을 하는 행위 자체가 치료의 방법이라고 하였습니다.
(후에 울만에 의해 두 이론은 절충이 됨)
보통 미술치료라고 하면 나움버그의 이론에 입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미술상담을 일정기간 진행하면서
내담자의 그림이 점점 더 잘 표현되는 것을 보면 크래머의 이론도 상당히 맞다고 생각됩니다.
미술심리를 하면서 든 생각은, '그림에 나타나는 요소들이 상징성을 갖는다면, 그것을 미리 알고 있는 사람들은
부정적인 부분은 그림에 나타나지 않게 하려고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방어기제가 심한 사람일 수록 그림 속에 숨기는 것들이 많은데, 사실 그러한 방어기제들을 통해 나타나는
'안그리는 것', '숨기는 것'이 그 자체로써 무의식을 표현하고는 합니다.
또한 사람마다 고유한 성향이 있어, 대부분은 모범답안을 들은 후에도 자신의 답을 바로 버리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미술치료는 그림에 나타난 상징성을 혈액형점이나 별점을 보듯이 그 자체를 분석하는 것이기보다는
내담자가 그린 그림을 상담자가 봤을 때 느껴지는 '느낌'과, 상담을 통해 주고받는 '대화'를 통해 심리상담이 이루어집니다.
'느낌'을 알기 위해 미술치료는 상담자가 미학에 관심이 있으면 더 상승효과가 있는 듯 합니다.
(그래서 상담자 자신도 그림을 많이 그려보는 게 좋은 것 같습니다.)
위의 그림은 제가 익숙하지 않은 타블렛으로 그린 집 그림입니다. 집 그림은 네 번째로 그려보네요.
심리학자가 자기 자신을 분석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저 역시 버리지 못하는 패턴들이 그림에 나타나고는 합니다.
산을 배경으로 하고, 가까이에 호수가 있고, 맑은 날씨인데 함박눈이 내리는 집의 풍경... 어떤가요?
무의식적으로 그려놓고 보면, 그림 자체에 언밸런스한 요소들이 나타나고 있는 게 보입니다.
배경은 겨울인데, 창가에 놓여져 있는 꽃이 핀 화분이라던가, 해가 쨍쨍한데도 펑펑 내리는 눈이라던가...
집 옆에 세로로 길쭉하게 있는 것은 처마 빗물배수관입니다.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집을 향해 나 있는 발자국이, 방금 집에 사람이 들어갔다는 것을 표현합니다.
무의식적으로 그린 부분들도 있지만, 의도적으로 그린 부분들도 있습니다.
특히 길가의 가로수는, 그림을 다 그리고도 뭔가 허전해서 추가로 그린 것입니다.
집 자체는 벽돌집이든 나무집이든 크게 상관있는 요소는 아니며,
굴뚝과 창문도 그냥 집에 있을 수 있는 양식일 뿐인데, 다만 창문의 위치가 실제 집의 창문 위치보다 비정상적으로
높거나 낮을 때, 그리고 문에 손잡이가 없을 때 등등의 '비정상적인 요소'를 파악하는 게 중요합니다.
미술치료를 시작할 때 보통 집과 나무, 사람 그리기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주변에 있는 흔한 소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림에 나타나는 자잘한 소재 자체가 나타내는 것도 무의식의 한 표현일 수 있으나
미술상담에서 보는 부분은 '다른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평범한 집과 어떻게 다른가' 하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사실 배경이 눈이 오든 해가 쨍쨍하든 그건 크게 상관은 없습니다.(이 요소는 대체로 내담자의 방어기제임)
굴뚝이 있는 경우, 연기가 없을 수도 있고 연기가 피어오를 수도 있는데
연기가 없을 경우는 굴뚝은 그냥 집의 일부분이지만, 연기가 있을 때에는 '그 연기를 표현하기 위해 그린' 요소입니다.
(굴뚝이 없는데 집에서 연기가 나면... 그것도 그 나름대로 상담할 요소가 되겠네요. 생각해보니 흥미가 생기는데요.)
연기의 크기가 큰지, 색은 많이 어두운지, 연기가 위로 올라가는지, 옆으로 흐르는지 등을 체크하게 되는데
물론 여기서도 정답은 없습니다. 연기가 짙으면 상담자는 내담자에게 '연기가 많이 검네요. 연기를 이렇게 까맣게 그린
이유가 있나요?'라고 직설적으로 묻습니다. 방어하는 사람은 대답을 얼버무리고, 마음을 연 사람은 그에 대한 이유를
말해줍니다. 상담자와 내담자는 진행을 하면서 신뢰를 쌓아가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서 내담자는 상담자에게
마음 속의 이야기를 점차 많이 내놓습니다. 정답은 그림 자체보다는 그러한 대화에서 나옵니다.
심리학자가 점쟁이는 아니니까요.(하지만 오히려 많은 내담자들이 상담자를 점쟁이처럼 생각해서 더 마음을 엽니다.)
저는 그림을 통해 조용하지만 쓸쓸하지는 않은 느낌을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집 하나만 평원에 덩그라니 그리지 않고, 한 곳에 '도로(길)'를 그린 것이고요.
제 그림이 어떤 심리를 나타내는지는 제 스스로는 잘 알고 있습니다만, 무의식적인 부분을 스스로 집어내기는
쉽지 않네요.
분석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분이 있으시다면 조언을 해주시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미술심리 시리즈는 앞으로도 계속 해볼 생각입니다.
흥미 있는 분들은 심리학자가 아니시더라도 재미삼아 참여해주세요.
# by | 2012/01/26 00:05 | 체셔캣 하우스 | 트랙백







